2009년 10월 28일
Dragon Slayer
드래곤의 날갯짓에 수십 층짜리 빌딩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거대한 먼지 구름이 도시를 뒤덮었다. 그녀는 그 곳에 서있었다.
그녀―레이 란은 외쳤다. “말하라!”
드래곤이 그녀의 외침에 대답했다. 「너는 누구냐?」
먼지 구름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레이 란은 무너진 잔해의 위, 부러진 한 자루의 칼을 들고 당당히 서 있었다. 그녀는 반복해 말했다.
“말하라. 너의 공포는 무엇이냐?”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조금 전의 외침보다도 더욱 큰 소리가 되어 온 도시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목소리가 마치 신화 속의 영웅처럼 위엄이 가득하다. 그러나 먼지 구름이 가라앉고, 그녀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면 누구도 그런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저것’은 영웅 같은 그런 온화한 것이 아니라고.
피를 머금은 광견. 스스로 괴물의 길에 기꺼이 한 몸을 바친 광전사. 괴물을 사냥하고 죽이는 몬스터 헌터. 그녀는 이제 진짜 괴물이 되려 하고 있었다.
“너의 악몽, 너의 공포, 너의 두려움. 모두 내가 삼켜 주겠다.”
그러자 부러졌던 칼이 완성되었다.
수천 년의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용을 물리쳤던 그 때 그 순간으로.
환상을 베기 위해 만들어졌고, 환상에 속한 것들을 물리치려는 온갖 것들의 염원이 담긴 한 자루 시미터, 카르데쉬!
레이 란이 움직였다. 완성된 칼을 든 그녀는 이미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섬광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여 드래곤의 다리를 베었다. 근육이 잘리고 뼈가 드러났다. 그 덩치에 걸맞게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다리를 베여 휘청 이는 순간 레이 란은 드래곤의 무릎을 부수고 뛰어올라 왼쪽 날개를 찢었다. 고통 속에서 용이 포효했다. 산천초목을 떨게 만드는 울림 속에서도 레이 란은 오롯이 칼을 휘둘렀다.
목을 베이자 드래곤은 더 이상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과거 세상을 불태운 괴물은 그가 강림한 도시의 이름처럼, 처참하게 몰락하는 중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될 것이다. 단 한 명,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이 도시의 모든 것들이 몰락할 것이다. 도시의 이름이 결정된 순간부터 그것은 운명이었다.
날개를 찢고, 손톱을 뽑고, 눈을 적출하고,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낸다. 일련의 동작은 숙련된 도축업자의 그것처럼 익숙하다. 당연하다. 이미 그녀는 알고 있다. 칼이 그녀에게 전해준 것이다. 수천 년 전, 어떻게 저 드래곤과 싸웠고 물리쳤는지를. 그리고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를. 그녀는 칼이 완성되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드래곤의 가슴을 밟고 선 레이 란은, 갈라진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심장을 보았다. 환상에 속한 것들도 결국 인간의 세계에 나타난 이상 육신을 가진 동물일 뿐이다. 레이 란은 드래곤의 심장 위로 뛰어 내렸다.
레이 란은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드래곤의 심장에 입을 맞췄다.
“너의 공포, 잘 먹어주마.”
# by | 2009/10/28 05:02 | Ruin City | 트랙백 | 덧글(2)


